세상을 합쳐서 보자

융합

요즘 서점에 가면 여러 분야가 결합된 신간 서적이 부쩍 눈에 많이 띄는데요. 예를 들어,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신화, 경제로 읽는 세계사, 인문학과 IT 만남 등.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특정 분야 전문성만 요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Convergence(융합), Consilience(통섭), Cross-over(교차) 등 용어가 더욱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 개념은 세세한 면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이종 영역 간 물리/화학적 결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에 그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학계 노력을 살펴볼까요? KAIST에서는 연구소 하나에 8개 학과 교수진이 모여 함께 연구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통섭 실험실 10개를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차세대융합기술원은 교수 4명당 실험실 3개를 제공하여 자연스럽게 학제간 연구를 유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

메디치 가문 후원으로 한 울타리 안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등 다양한 분야 위대한 예술가들이 모여 르네상스 꽃을 피우게 되었는데 이를 Medici Effect라고 합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사 기술 개발을 위해 여러 다른 분야 석학이 모여 연구하던 공간(빌딩 20)이 있었는데 이 공간에는 분야별 구분 없이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게끔 별도 칸막이를 설치하지 않았고 바로 오늘날 MIT 미디어랩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세상에 출시된 상품 실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대형 병원에는 MRI Scanner가 있습니다. 아마 건강검진 때 한 번쯤은 경험을 해 보셨을 텐데요. 어른이야 별 불편 없이 검진을 받지만 어린아이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굉음을 들으며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상당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이에 GE Healthcare 사는 MRI 스캐너 내, 외관과 검진 과정을 해적/ 우주/ 정글/ 사파리 등 주제별 체험 과정으로 새롭게 디자인하였습니다. 대본을 만들어 어린이에게 검진이 아닌 모험 여정이라고 안내합니다. 예를 들어 배에 올라타 있는 동안 움직이지 않아야 해적에게 들키지 않는다고 얘기해 주거나, MRI 스캐너 굉음이 초항속모드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항해(검진)를 마치면 검사실 구석에 있는 상자(일명 해적 가슴)에서 작은 보물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린이 대부분이 진정제나 수면제 도움 없이 MRI 검진이 가능해졌고(기존에는 어린이 환자 80%가 수면제나 마취제 사용), 병원 입장에서는 MRI 검진을 받는 어린이 환자 수가 크게 증가하여 수익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GE Healthcare Adventure 시리즈는 병원 상품과 Theme Park 결합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융합CT Pirate Island Adventure 

융합MR Space Runways Adventure
(출처 : GE Healthcare 공식 홈페이지)

최근 고급 자동차 브랜드에서 BMW iDrive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그 시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게임기나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조정기 Jog & Shuttle(조그셔틀)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운전자는 시선을 전방에 둔 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Nike Shox(샥스)는 운동화에 spring back 기능을 넣었는데 이는 포뮬러원(자동차 경주 대회) 자동차 충격 흡수 장치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융합Jog & Shuttle(조그셔틀) 개념이 장착된 자동차

로봇 박사로 유명한 데니스 홍이 개발한 나비로스(NABiRoS:Non-Anthropomorphic Bipedal Robotic System)라는 2족 로봇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로봇은 앞뒤로 움직이도록 설계된 기존 2족 로봇과는 사뭇 다릅니다. 다리 부분은 활 모양으로 휘어져 있고, 무릎 관절 부위는 회전이 가능하여 옆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문지방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훨씬 안정적입니다. 그럼, 이 로봇은 어떤 분야로부터 영감을 얻었을지 궁금하시죠? 한 강연에서 그는 발레와 펜싱 동작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나비로스를 만들게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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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소 엉뚱한 상품 탄생 비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800년대 영국 교도소에서는 난폭한 죄수를 통제할 목적으로 트레드밀(Treadmill)이라는 고문 기구를 사용하였습니다. 죄수들은 하루 6시간 정도를 벽만 보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단 오르기를 반복합니다. 트레드밀 고문은 이틀에 한 번꼴로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는 효과와 맞먹었기 때문에 죄수들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고문 기구는 어떤 분야에 접목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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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한 서커스 단원이 트레드밀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고 하체를 단련할 목적으로 운동기구로 개조하였습니다. 즉, 감옥에서 사용하던 고문 기구에 운동기구가 이종 결합되어 러닝머신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러닝머신을 이용하며 우리 자신을 고문하고 있는 셈이네요.^^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러한 “합쳐서 보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 입니다. 즉 나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자신이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됩니다. 상품기획도 마찬가지입니다. “Google이라면 우리 상품을 어떻게 만들까요?”, “Disney라면 우리 사업을 어떻게 펼쳐 갈까요?”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그들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능한 많은 형용사와 명사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랜덤하게 조합해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아주 훌륭한 이종 결합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나요? 네, 바로 비빔밥입니다. 여러 가지를 단순 짬뽕으로 섞는 게 아니라 고유 맛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도 창출하는 그런 비빔밥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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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모아둔 만큼의 점들만 서로 연결할 수 있다.
– Amanda Palmer –

심영환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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