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는 무료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필요가 발명을 만든다, 청진기의 발명

프랑스 의사 르네 라에네크(René Laennec)는 1781년 프랑스 캥페르에서 태어났습니다. 라에네크는 1816년 파리 네케르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청진기를 발명하고, 청진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에네크의 청진기는 지름 2.5cm, 길이 25cm의 속이 비어있는 나무통 형태로 설계되었는데요. 분해와 조립도 가능하면서 환자의 심장과 폐 소리가 전달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라에네크의 청진법은 진료 방법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라에네크의 청진법은 진료 방법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라에네크는 원래 심장질환 등을 앓고 있는 과체중 여성 환자를 진단했는데요. 종이를 말아서 심장을 청음 했을 때 소리가 명확하고 뚜렷하게 들려 증상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성 환자의 신체에 귀를 대고 청음 하는 직접 청음법이 유일한 진단 방법이어서 남성 의사에게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들이 나무로 만든 대롱으로 서로 소리를 전달하며 뛰노는 것을 보고 청진기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죠. 청진기를 통해 진찰하는 간접 청진법이 가능해지면서 환자 흉부 소리를 듣기 위해 직접 귀를 갖다 대는 관행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만들고 실험하고 대체하고자 하는 노력이 기존의 관행을 뒤집게 되는 걸 인류 역사에서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록스(XEROX)의 관행이 불편함을 고치지 못하게 만들다.

우리에게는 ‘무료 소프트웨어’라고 잘못 알려진 Free Software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료’라고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소프트웨어’라고 해석이 되었어야 하는 단어죠. 자유 소프트웨어는 제작자에게 저작권은 인정하면서 어느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복제해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카피레프트(Copyleft, Copyright의 반대되는 개념) 개념의 프로그램을 의미합니다. 즉, 공짜가 아니라 누구든지 지식을 공유하고 나눌 권리가 있다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이런 운동의 중심인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설립자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은 GNU 프로젝트와 리눅스를 비롯해 소프트웨어 업계의 변혁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1980년 그는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MIT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죠. 당시 유명한 사무기기 회사였던 제록스(XEROX)는 새로운 프린터를 MIT에 기증했습니다. 보통 한 장을 프린트하는 데 몇 분씩 걸렸으나, 새로운 프린터는 수십 초 만에 출력이 완료되었죠. 그렇지만 이 프린터는 다른 프린터와 마찬가지로 고질적인 종이 걸림 현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프린터 관리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종이 걸림 문제를 일으키면 다른 사람들은 프린터 앞에까지 와서야 문제가 발생한 것을 알게 되어 매우 불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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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런 종이 걸림 현상을 해결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본 적이 있던 스톨먼은 종이 걸림 현상이 발생하면 출력을 지시한 사용자에게 ‘종이 걸림’이 발생했다는 메시지를 보내 에러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프린터에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바로 프린터를 제공해 준 제록스에 문의해 프린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개발자를 찾아냈습니다.

카네기멜론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개발자를 찾아가 소스코드를 제공해 주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도움을 요청했죠. 그렇지만, 그 개발자는 제록스와 비밀유지 협약서(NDA)를 작성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보기 좋게 그의 제안은 거절당한 것이죠. 아무리 세상을 좋게 만들려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기업의 폐쇄적인 정책들이 모든 것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직접 만들고, 공유하는 자유 소프트웨어를 시작하다.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에 발끈한 그는 직접 프린터를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회사들의 폐쇄적인 소프트웨어 정책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유닉스(UNIX)라는 운영체제가 AR&T연구소만 가지고 있던 독점 규제에서 풀려나면서 모든 대학이나 기업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닉스는 상업화 버전이 제공되면서 무료 이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죠. 이것에 저항하기 위해 버클리 대학에서는 무료 버전의 유닉스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Free BSD(Berkeley Software Distribution)입니다. 이 운영체제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매킨토시나 아이폰 등의 OS로 발전되어 사용되고 있죠.

리처드 스톨먼은 “프로그래머들 사이의 우정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행동은 프로그램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코드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전형적인 마케팅 서약은 프로그래머들이 다른 프로그래머를 친구로 대하는 것을 막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사람은 우정과 준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라는 GNU 선언문을 통해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든 요리의 레시피를 보고 자신도 똑같은 요리를 만들거나 더 나은 요리를 위한 기본 레시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소프트웨어 개발도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GNU(GNU is Not Unix) 정신의 기본입니다. 기업들이 지식의 공유를 막고,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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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ux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터넷 세상도 불가능했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1991년 핀란드의 대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는 SW 업계의 역사를 바꾼 리눅스(Linux)를 세상에 알립니다. 그리고 이 리눅스는 토발즈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전 세계 개발자들이 참여하여 피드백을 주고, 코드를 보완하며 완성된 운영체제였습니다. 그리하여 GNU/Linux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죠.

전세계 IT서비스의 70% 이상이 오픈소스에 의지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사람들, 발명가나 의사, 과학자, 개발자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곤 합니다. 리처드 스톨먼의 일화에서는 해커를 열받게 하면 회사에 어떤 재앙(?) 닥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그가 시작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은 개발자들이 협력하여 만드는 ‘오픈소스’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세계에는 10,000여개 이상의 오픈소스가 70% 이상의 IT 서비스에서 동작하고 있습니다. 즉, 오픈소스가 없는 인터넷 세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우리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에 도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코로나 시대에 집콕만 하고 있느라 힘드시죠? 내 주변에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변화의 노력을 작게나마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삼성SDS 소셜크리에이터 조남호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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