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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영웅은 다시 돌아오고

Globalization of supply chains

공급망 체제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말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부른 SCM의 두 번째 전성기

코로나19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시점이었죠. 세계화 이후, 새로운 방향성이 만들어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처음 등장했던 2019년 말까지만 해도 코로나19가 팬데믹(pandemic,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고 세계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SCM도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지 않았죠. 예상과 달리 코로나19는 장기화되었고 SCM의 두 번째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첫 번째 시그널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 우한이 봉쇄되고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의 물류가 멈추면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죠. 그 다음은 일본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다룬 언론보도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차 울산공장 일부 라인 스톱'
신 현대차 울산공장 일부 라인이 멈췄다. 현대차에 따르면 4일 오전 제네시스를 생산하는 울산 5공장 1라인과 넥쏘·투싼을 생산하는 2라인이 가동되지 않았다. 자동차 내 배선 장치 묶음 부품인 '와이어링 하네스'가 공급되지 않아 공장을 가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국내 자동차 산업이 '정지'를 맞았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과 신종 코로나로 중국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열흘 이상 제품 공급이 끊긴 상태다.
- 서울경제 2020-02-03 서종갑 기자 기사 일부 발췌

불산, 수입선 다변화·국산 개발… ‘탈일본’ 속도
일본산 불산의 대체재를 찾기 위해 안팎으로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보관이 어려워 기업별 재고가 한두 달 치뿐인 고순도 불화수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엿새 동안 일본서 직접 뛰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불산 중에서도 일본산에만 의존했던 공정도 대체가 가능할지, 국산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까지는 시험을 끝낼 계획입니다. 일본 정부는 최종 사용처까지 요구하며 차단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방법은 일본 업체의 해외법인이 현지 생산한 불산을 들여오는 겁니다.
"일본 불산 업체들은 해외 법인을 통한 한국 수출이 가능한지 일본 경산성에 문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우리 기업 관계자가 전했습니다. 당장은 국산품 대체와 수입선 다변화로, 장기적으로는 국산 소재 개발로 기업들은 탈 일본을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 KBS뉴스 2019-07-17 서재희 기자 기사 일부 발췌

이전에도 유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제가 썼던 책에서도 몇 가지 사례를 소개 했었지요.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야틀라이외쿠틀 화산 분출'
2010년 봄, 에이야프야틀라이외쿠틀 화산의 2차 분출은 규모가 매우 컸다.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분출됐고, 남풍이 불면서 유럽의 항공 교통은 마비됐다.

‘태국 짜오 프라야 강 범람'
2011년 10월 태국의 짜오 프라야 강이 범람하여 반세기 만에 심각한 홍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방콕 북부의 주요 산업 단지가 침수되었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컴퓨터와 자동차 부품의 생산이 차질을 빚었다.

공급망의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건은 뉴스 말미에 5분 정도 할애된 해외 토픽에서 다른 뉴스들과 짤막하게 소개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급망의 세계화로 인해, 아이슬란드의 이름도 난해한 화산의 폭발이 제가 다니는 회사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때 판매 부문은 거의 전시 상황이었습니다. 유럽에 위치한 거래선의 모든 납기일을 체크해야 했고 인근 국가에 가용한 제품 재고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죠. 그리고 화산재로 운행이 불가능한 항공편 이외의 운송 방법이 검토되었고, 최악의 경우 납기가 부러질 경우에 발생할 위약금 관련 내용도 회의에서 논의 되었습니다. 민간 항공사의 항공기는 모두 취소되었기 때문에 전용기가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당분간은 유럽으로 수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해당 물량의 생산 계획이 모두 취소되고 다른 대륙의 물량으로 생산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 화산 사태가 고객과 관련된 문제였다면, 태국 홍수 사태는 부품 조달에 관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 때는 해외의 생산 법인에 근무하던 저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었죠. 제가 소속되어 있던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의 주요 부품이 하드 디스크였습니다. 불행히도 당시 우리가 사용하는 하드 디스크의 대부분을 태국에서 조달 받고 있었죠. 태국의 홍수 사태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질 즈음, 사무실 직원들의 메일함에는 부품 수급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수립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메일과 회의 계획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나온 뉴스들과 10년 전 뉴스를 보면 유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화산과 홍수 사태의 여파는 공급망의 세계화가 원인이었지만 세계화의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습니다.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결과를 낳았죠. 한 국가나 지역에 치우쳐 있던 핵심 부품 공급처나 공장, 제품 보관창고를 세계 여러 곳으로 분산하는 조치가 이루어졌죠. 어쩌면 세계화를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릅니다. 반면 코로나 사태는 전혀 다릅니다. 이번에는 안전을 위해 물리적으로 교류와 접촉이 제한되며 문제가 촉발되었죠.

현대차 공장의 생산 라인을 멈춰 세운 '와이어링 하네스'라는 부품은 엄청난 기술이 들어간 최첨단 제품도, 자동차의 성능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부품도 아닙니다. 단지 자동차 안에 수 없이 들어있는 전선들을 묶고 정리하는 부품이죠. 그렇다 보니 수익성이 좋지 않았고, 공급망의 세계화로 국외로 시선을 돌려 원가를 줄일 수 있는 특정한 국가에 공급업체가 편중되다가 어느 순간 그 업체들마저 몇 개 안 남게 되어 버린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중국은 사태가 심각해지고 춘절(새해맞이 명절) 연휴가 겹치자 도시를 봉쇄합니다. 그 결과는 현대자동차 주 생산 라인의 중단이었죠.

불산은 조금 특별한 경우였죠. 코로나 사태를 핑계로 일본 정부가 수출 제한을 하긴 했지만, 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인이야 무엇이었든 문제는 국가가 전염병 등의 이유로 특정한 제품의 수출을 갑자기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런 문제는 이후에 마스크, 진단키트, 특히 코로나 예방 백신의 수출과 수입에서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최근에는 반도체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고 있죠.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다툼까지 섞이면서 경제 전쟁 양상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급선을 세계의 여러 곳에 분산하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번에는 두 가지 방향으로 문제 해결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리적, 정치적으로 가까운 곳들을 ‘블록화’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체계의 구축입니다.

(환경변화로 인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대규모 환경변화 : 코로나19 방향성 전환 : 안전 공급망 재편 : 비대면, 불록

전 세계를 대상으로 효율화와 비용/재고 최소화라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지탱되던 글로벌 SCM 체계에 변화의 시기가 다가온 겁니다. 이제 비대면과 블록화라는 새로운 방향에 맞춰 물리적 공급망이 재편되고 동시에 재편된 공급망의 최적화 작업이 뒤따르겠지요. 이 과정을 어떤 기업과 공급망이 빠르게 완성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명암이 갈리겠죠.
그렇다고 그 동안 정답처럼 여겨졌던 공급망의 자원을 효율화하여 비용과 재고를 줄이는 형태의 공급망 구성과 전체 최적화가 완전히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바탕 위에 거역할 수 없는 전제조건인 ‘안전’이 더해지는 형태가 되겠지요.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자원 효율화와 전체 최적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안전을 먼저 확보한 상태에서 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는 동시에, 최적화되고 있습니다.

삼성SDS 소셜 크리에이터 주호재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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