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7편: 장인의 연장

얼마 전에 집에 배관이 막혔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업체를 하나 찾았습니다. 연락을 드렸더니, 다음 날 젊은 분이 깔끔한 공구 통을 들고 왔습니다. 뭔가 전문가 냄새가 나고 잘 정리된 공구 통 안을 보니 믿음이 갔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온종일 집안을 들쑤셨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어쩔 수 없이 관리 사무소에 전화했습니다. 혹시 다른 집에도 비슷한 일로 사람을 부른 일이 없나 하고요. 한 분 계신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옛날 중국 영화에서 쿵후 사부 같으신 분이 낡은 공구 통과 이상하게 생긴 갈고리 비슷한 쇠줄을 들고 방문했습니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 이상한 쇠줄로 몇 군데를 쑤시더니 금방 원인을 찾고 해결한 겁니다.

지난 글(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6편:멋쟁이는 옷을 제때 갈아입는다)에 이어서 언제 DT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DT를 위해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의 핫한 기술을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 답은 회사마다 다를 수 있지만, 평균적인 판단 기준이 두 가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6편에서 말씀드린, “도구는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죠. 이번에는 두 번째 기준을 얘기할 겁니다. 우리 회사의 목적에 맞는 도구(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기술)를 선택해 도입했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내공을 뿜어내던 그분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저는 그 쇠줄이 탐났습니다. 그래서 여쭈었죠. 그거 어디서 사신 거냐고. 산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일을 30년 넘게 하면서 스스로 고안하고 개선한 결과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구의 각 부분이 근처 오래된 아파트에 적합하게 고안되어 있다고도 알려주었습니다.

신입 이 안에는 모든 상황에 대처 가능한 27종의 공구가 들어있지요. 고수 이거 하나면, 이 동네는 끝이여!!

자부심 뿜뿜 뿜어나는 고수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데자뷔 같은 장면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분명 비슷한 경험이 하나 있었습니다. 갓 사회에 나온 햇병아리 시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자회사에 견학을 갔습니다. 그때는 그런 일이 많았죠. 공장에 들어갔더니 다양한 기계들이 한 줄로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중에 특히 눈에 들어온 장비가 칩마운터라는 녀석이었습니다. 전자 기판에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부품들을 자동으로 부착하는 기계였죠. 경험이 없었던 제가 보기에는 그 기계과 거의 모든 일을 다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최종 검사와 이동만 사람이 하는 듯했죠. 그런데 그 칩마운터는 장비 제조 회사에서 사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장비를 만드는 회사가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 직접 제품을 만들지 않고 장비를 만들어서 팔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질문이었죠. 같은 회사에서 생산된 기계들이지만 그 기계를 자신의 회사 제품에 맞도록 변경하고 각 기계 간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생산성과 제품의 품질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회사 생활을 좀 더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회사일수록 제품을 개발하는 초기에 장비 제조회사와 같이 협업하여 개발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때 알았습니다. 아무리 범용 장비라 해도 어떤 회사가, 어떤 직원이 쓰느냐에 따라 과정도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관계된 수많은 기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함께 언급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은 근본적으로는 젊은 배관공이 가진 새로운 공구 통일뿐입니다. 그것을 활용해 고수용 전용 연장을 만드는 것은 배관공의 기량 차이죠. 그리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먼저 내 안을 살피고 내 제품과 핵심 역량에 날개를 달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다양한 기술과 도구를 섞고 조합해 ‘고수의 연장’을 만드는 것이 맞습니다.

자신만의 연장을 만들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자기 생각과 손을 거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구의 기본 재료는 공구상가에서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합과 변형에 자기 생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실전에서 유연성이 생깁니다.

젊은 배관공이 가졌던 새 공구 세트만을 가지고는 현장에서 자주 곤란함을 겪을 겁니다. 누구라도 어느 정도의 돈만 지불하면 가질 수 있는 도구이고 그것으로 쌓을 수 있는 노하우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신만의 도구를 갖추고 있는 배관공은 다양한 상황에 손쉽게 대응이 될 겁니다. 물론 자신이 만든 특화된 도구의 힘도 크겠지만, 그 도구를 만들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시의적절하게 꺼내 사용하실 거니까요. 필요하면 언제라도 도구를 그 자리에서 수정해 사용하겠죠. 이걸 개인에 적용해 말하면 임기응변 능력이고, 기업으로 따지면 기민성(Agility)이 높다고 하죠. 이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정확히 알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서도 이 능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픈 교훈을 코로나 사태를 통해 배운 기업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디지털 전환의 핵심 선수 중 하나는 단연 공유 경제였죠. 공유라는 기치를 걸고 에어비앤비는 세계 최대의 호텔 체인을 추월했고, 우버는 렌터카 산업을 고사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두 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타인의 집과 차를 완전히 신뢰하고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변화가 ‘비대면’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거스를 수 없을 것 같던 ‘공유 경제’라는 큰 물결을 막아선 겁니다. 물론 이 싸움의 끝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이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능력과 노하우에 새로운 기술을 빠르고 적절히 적용해 경쟁력을 먼저 확보하는 쪽이 이길 거라는 점입니다.

그런 움직임은 벌써 시작되었더군요. 며칠 전, 출장을 갔다 역으로 가는 길에 카카오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유형이 하나 더 늘어서 바퀴벌레잡이로 유명한 회사 표시가 있더군요. 그리고 이런 문구가 깜빡거립니다. “000과 함께하는 T 블루 바이러스 케어”. 카카오가 원래 가졌던 디지털 연장에 다른 고수의 전통 연장을 빌려와서 꽂아 넣은 격입니다.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되지 않은 기업이라면 이렇게 빠른 대응이 가능했을까?
반대의 경우(전통기업이 디지털 기업의 기술을 접목)도 이렇게 빠르고 유연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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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오늘부터 시작해서 어제까지 전혀 안 하던 것을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내가 가진 역량을 좀 더 강하고 유연하게 만들 방법을 새로 나온 기술과 연장, 전통의 도구나 일반 도구에서 찾아 쓰는 것입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나에게 맞는 도구를 도입했다면, 나에게 맞춰진 맞춤형의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 개념을 확실히 장착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현장에서 맞서야 할 것입니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1편 : 애인의 유산과 매트릭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2편 : 사이퍼의 스테이크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3편: DT 사이클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4편: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5편: 요약은 컨설턴트의 숙명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6편:멋쟁이는 옷을 제때 갈아입는다

삼성SDS 소셜크리에이터 주호재(Principal Consul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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