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6편: 멋쟁이는 옷을 제때 갈아입는다

코로나 때문에 봄인데 봄이 아닌 것 같은 봄을 두 번째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봄은 봄이라 날씨는 따뜻해져서 화사한 봄옷을 꺼내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어두운색의 겨울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언제 적용할 것인지가 계절이 바뀔 때 옷을 갈아입는 것과 비슷합니다. 너무 일찍 봄옷을 꺼내 입으면, 사람들의 시선은 끌겠지만 때늦은 한파가 오면 감기에 걸리겠지요. 그렇다고 여름이 올 때까지 겨울옷을 입고 다닌다면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아야 하고 그 시점을 잡는 것도 우리 회사의 체질을 잘 고려해 결정해야 합니다. 사람도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 있고, 그렇지 않은 체질이 있듯이 회사도 속해있는 산업과 만드는 제품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언제, 어디서부터 적용해야 할지 달라집니다.

포털 게임 SNS O2O와 같은 디지털 기반 기업은 사업에서 일하는 방향으로 디지털 전환을 확장하고, 중공업 전자 화학 제약과 같은 전통 기업의 디지털 전환 방향은 일하는 방법에서 시작해 사업 자체로 확장한다.

어떤 것부터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통 기업과 디지털 기반 기업으로 기업의 유형을 나눠서 큰 관점에서 방향성을 만들어 봤습니다. 만약 우리 회사가 전통기업에 속해있다면 일하는 방법에서 사업 자체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고, 디지털 기반 기업이라면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일하는 방법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론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DT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의 핫한 기술에 올인해야 하는 시점은 언제일까에 대한 답은 회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핵심 기준이 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그중 첫 번째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오해하지 말자!!!

현장에서 컨설팅을 진행하다 보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빅데이터나 인공지능과 동의어로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다짜고짜 ‘인공지능은 무조건 해야지’ 식의 성급한 반응과 ‘우리 회사는 아직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를 논하기엔 거리가 있어’라는 방어적인 반응입니다. 앞선 글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우리가 가진 물질의 영역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기술은 이것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기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역사가 이미 증명했듯이 기술은 도구이고, 강력하고 효율적인 도구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개선해서 실전에 활용하는 이들이 승리를 쟁취했으니까요. 박물관에 가서 고대 무기들을 자세히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멋지게 다듬어지고 예술적인 감각까지 넘치는 무기는 대부분 청동기 검입니다. 그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철기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에 청동 검을 최고로 강하면서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터에 나가서 투박한 철로 만든 검을 만났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어쩌면 지금이 청동기와 철기의 전환기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도구를 선택해,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하이힐과 속옷 탄생의 설화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 한강변을 걷다가 일행 중 한 명의 하이힐이 맨홀 구멍에 걸렸습니다. 잠깐 비틀거리고 나서 괜찮아서 웃어 넘겼지만, 운이 나빴으면 다리를 다칠 뻔했죠. 그래서 할 필요도 없는 말을 했습니다.

“불편하고, 신고 다니기 힘든 하이힐을 왜 신냐?”
그녀는 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죠.
“예쁘잖아.”


이렇게 신는 이유가 명백한 하이힐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지독히도 실용적인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중세 시대까지 유럽에는 변변한 화장실이 궁전에도 없었죠. 그렇다 보니, 노상방뇨 수준을 넘어 길거리에 똥 덩어리가 넘쳐났습니다. 날씨라도 좋으면 말라버리니 그래도 견딜 만한데, 문제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죠. 길은 진흙탕이 되고 그 진흙탕에 똥 덩어리가 녹아 섞여 똥 머드가 가득해진 곳을 걸어 다녀야 했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초창기의 하이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성용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공중위생 수준이 높아지고, 거리에서 똥 머드는 사라져갑니다. 순리대로라면 하이힐도 같이 명을 다해야 했겠지요. 바로 그때, 미적 감각이 높은 큰 언니가 한 분 계셨던 겁니다. 저 물건이 똥 머드 회피 용이 아니라, 내 짧은 다리를 보완할 절호의 아이템임을 알아채셨던 거죠.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큰 언니의 언니가 또 계십니다. 때는 로마가 식민지 원정을 한창 하고 다닐 때였죠. 그날도 어느 아프리카 인근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을 기념한 가두 행진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빛나는 황금 흉갑을 입은 귀족 청년 장교를 이 언니는 넋을 읽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납니다. 그녀의 눈은 청년의 얼굴에서 가슴에 꽂히죠. 옆에 있던 원로원 의원이었던 남편에게 말합니다.

“너무 이뻐. 갖고 싶다.”
남편은 속이 부글부글했겠죠. 하지만,
‘또 뭔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저 흉갑 말이야. 내가 하면 이쁠 거 같지 않아?”
남편은 얼마 후 1급 전투 물자에 손을 대게 됩니다. 부인은 아주 만족했다고 하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개념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활용되는 기술들의 관계가 하이힐과 여성 속옷의 탄생 설화(약간의 각색이 더해졌습니다만, 핵심에 큰 역사왜곡은 없을 거라 짐작합니다)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말 그대로 그동안 디지털이 아니었던 부분을 디지털화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작업을 쉽게 하고, 그 전환 결과를 효율적으로 잘 쓰기 위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기술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쓰거나 새로운 기술을 고안하는 활동을 통틀어 큰 의미의 디지털 전환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이힐과 브래지어도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안목 있는 큰 언니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물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이건 똥 덩어리 회피용이라오. 소중한 국가의 전략물자요. 몰라몰라!!! 안목 있는 큰언니: 이쁜거 다 내꺼.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도구의 발전과정이다’. 그런데 그 도구의 활용과 발전 과정이 하이힐처럼 꼭 처음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 가는 것은 아니죠.

세탁기의 새로운 역할

중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농촌에서도 세탁기를 많이 사용하게 됐어요. 그 즈음부터 세탁기 고장 신고가 급격하게 많아졌다고 하는데요. 세탁기 회사들은 조사를 합니다. 왜 갑자기 고장이 늘어났는지! 현장에 가본 회사 관계자들은 경악합니다. 중국 농부들이 추수한 감자, 고구마를 세탁기에 넣어서 세척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탁기는 옷을 빠는 거예요. 감자나 고구마를 씻는 용도가 아니에요.”

한 회사만이 다르게 반응했죠. 고객이 그렇게 사용하면 그게 맞는 거다. 그리고 조치를 취합니다. 배수구를 넓히고 흙탕물과 이물질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하죠. 이 세탁기는 농촌에서 대박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흉갑을 원했던 마눌님에게 국가 전략물자를 어디 함부로 쓰냐고 면박을 줬다면 도덕성 높고 도덕적인 로마 시민은 되었겠지만 마눌님에게 사랑 받는 남편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후대에 엄청난 속옷 산업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겠죠.

신기술을 파는 회사, 이를 활용하는 회사가 꼭 기억해야 할 관점입니다. 각광받는 기술이나 도구가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신기해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쓰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쓰니 나도 그러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강박에 싸이기도 하죠. 여기에 불을 붙이는 것이 그 기술과 도구를 만들거나 소개하는 회사(전자는 솔루션 회사라 불리고, 후자는 컨설팅 회사라 불립니다)입니다.

“요즘은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트렌드니까 뭐라도 하셔야 합니다.”

이런 식의 기술 도입은 아주 위험합니다. 성공 가능성은 낮고, 리스크는 높습니다. 도구는 잘 가져다 쓰는 게 최고입니다. 이 제품의 원래 목적은 이거니까 이렇게만 쓰시는 게 맞아요. 이런 태도를 가진 기업이나 전문가는 일단 의심해야 합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더 그렇습니다. 아무도 그 기술이 어떻게 성장할지, 어디에 활용해야 할지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필요한 것을 명확히 아는 것입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 회사가 디지털로의 전환을 잘 하기 위해 적합한 도구를 가져다 쓰는 것이지, 목적과 관계없이 유행하니까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을 도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편에서는 기술에 다른 관점을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1편 : 애인의 유산과 매트릭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2편 : 사이퍼의 스테이크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3편: DT 사이클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4편: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5편: 요약은 컨설턴트의 숙명

삼성SDS 소셜 크리에이터 주호재(Principal Consultant)

이 글이 좋으셨다면 구독&좋아요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저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subscribe

구독하기

subscribe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