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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8편 : 빈 비누 케이스를 제거하라

미국 어느 비누공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비누를 포장하는 기계가 가끔 오작동으로 비누가 들어있지 않은 빈 케이스가 출하되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경영진은 이 문제로 외부 컨설팅을 요청했죠. 외부 컨설턴트들은 사무실을 잡고 현장 라인을 둘러본 다음 여러 가지 해결책과 리스크를 나열해 최종 해결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이 권고한 방법은 엑스레이 투시기를 도입하여 빈 케이스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문제는 비용인데 컨설팅 비용 10만 달러는 이미 발생했고, 엑스레이 투시기 구매에 50만 달러, 인건비 5만 달러가 추가로 발생하게 생겼습니다. 경영진은 이 방안을 도입할지 말지, 도입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는 없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장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연락이 옵니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간 경영진은 그만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고, 그는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 포장 기계에서 나오는 빈 케이스를 날려버리고 있었습니다. 선풍기는 50달러짜리였죠.

우리는 종종 유행을 따르다가 본질을 놓치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아마도 컨설턴트들은 비누 케이스 속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에 꽂혀서 그 주위를 빙빙 맴돌았을 겁니다. 그래서 엑스레이 투시기가 필요했겠죠. 반면, 신입사원은 '빈 케이스를 제거하는 것'이 본질이라 생각했습니다. 비누 케이스 속이 비어있다는 것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죠.

여기까지는, 한참 제가 혁신에 빠져 있을 때 종교처럼 숭배했던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면 제가 지난 6편과 7편에서 강조했던 ‘도구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과 고수의 연장처럼 그것 자체가 근사해 보이든 조잡해 보이든 상관없이 필요한 기능을 자신에 맞게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는 관점에 부합되는 에피소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DT 확산과 적용 사례를 보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선풍기라는 빈 비누 케이스 제거 시스템이 개선 가능성과 확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성공 사례가 만들어낼 회사 분위기와 문화입니다. 가상이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전개해 볼까요?

선풍기를 가져온 신입사원은 임시 인턴에서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승진까지 합니다. 그는 계속 선풍기 솔루션처럼 간단하지만 섹시한 해결책을 고안해 냅니다. 이에 고무된 다른 사람들도 이 물결에 편승하죠. 그러자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몇몇 솔루션은 실제 성과를 만들어냅니다. 분위기는 더 고조되고 회사의 문화가 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효과를 어필하는 보고서가 난무하고 그 기대 효과를 합쳐보니 회사 가치의 10배가 됩니다. 그런데 실제 판매와 품질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더 문제는 비누 생산라인입니다. 간단한 아이디어를 구현한 잡동사니가 라인 주변에 가득해 작업에 방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죠. 그즈음에 새로운 문제가 나옵니다. 소비자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비누 품질이 판매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거죠. 새로운 불량 범주가 나타납니다. 성형이 잘못되어 모양이 조금 이상한 비누나 용량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비누가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선풍기 시스템은 이런 불량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반면 바로 옆 경쟁 회사에서는 엑스레이 투시기를 그 즈음에 도입했고, 그 외에도 비누 무게를 체크하기 위한 전자저울도 엑스레이 투시기 옆에 설치했습니다. 첨단 기기들을 라인에 깔끔하게 배치한 것이죠. 엑스레이 투시기 기능도 계속 개선하여 단순히 비누 케이스가 비었는지 체크하는 일에서 비누에 이물이 섞여 있는지도 검출하게 됐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이 한창 강조될 때 한 호텔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고가의 CRM 시스템 도입을 고민하던 CEO가 한 호텔에 체크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는데 프런트 직원이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언제 이 호텔에 묵었는지 언급하며, 다시 호텔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 CEO는 프런트 직원에게 어떤 CRM 시스템을 쓰고 있길래 고객 정보가 이렇게 잘 관리되고 있느냐고 감탄하며 물었습니다. 그 직원의 답은 의외였죠. 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방금 손님을 모시고 온 택시 기사님이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죠. 생각해 보니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동안 택시 기사님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얘기하자 기사님은 자연스럽게 물었습니다.

“손님, H 호텔은 처음이신가요?”
“실례지만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흡연은 하시나요?”
“지난번에 어떤 객실에 묵으셨나요?”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 호텔 측이 궁금해하는 내용이 섞여 있었던 거죠. 그리고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짐을 벨보이에게 넘기면서 그 정보를 전달하고 벨보이는 프런트에 다시 주요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10달러의 팁을 지불했습니다. 수십억이 들어야 가능할 일을 10달러의 팁으로 해결한 것이죠. 그런데 ‘택시 드라이버 CRM 체계’는 지금도 잘 작동되고 있을까요?

‘선풍기 빈 비누 케이스 제거 시스템’과 ‘택시 드라이버 CRM’은 길게 보면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섹시해 보이죠.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섹시한 미봉책을 과도하게 칭찬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을 계속 미루면 말도 안 되는 싸구려 미봉책이 넘쳐나는 회사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저렴해지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 곡예 같은 균형을 잡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내 목적의 본질은 명확히 하되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도 적극적이어야 하는 거죠.

본질을 깊게 고민하고, 이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사용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효율을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싸고 효율적이지만 과연 몇 년 후에도 유효할까? 이 분야에서는 단순한 해결책이 어울리지만 다른 사업 분야에서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과 신기술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과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사례로 든 호텔이 택시 드라이버 CRM을 아직 고수하고 있다면, 아마도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겁니다. 일단 요즘 택시 안에서 손님과 얘기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으로 목적지를 입력했고, 계산도 자동으로 하니까요. 그리고 코로나 이후 좁은 공간에서의 대화는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택시 CRM 체계로 획득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고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손님이 직업을 속여 말할 수도 있고, 택시 기사님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고객의 모든 투숙 정보는 물론 어떤 방을 선호하는지, 어떤 계절에 자주 찾는지, 투숙 중 어떤 요구를 했었는지 데이터가 말해주는 시대입니다. 거기에 더해 스마트키 서비스를 사용하면 프런트를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운 좋게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았더라고 거기에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내 목적에 맞는 더 효율적인 방식을 찾고 발전 시켜 나가야 합니다.

넷플릭스의 모토는 ‘내가 원하는 영화를, 내가 원하는 곳에서’입니다. 이 모토를 차별화하여 제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방법이 DVD를 우편으로 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신작 타이틀로만 고객이 원하는 영화를 채우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잘 대여되지 않는 고전 영화를 발굴하고 영화를 잘 설명하는 카탈로그를 DVD와 같이 보내서 고객이 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넷플릭스가 DVD 타이틀을 늘리지 않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늘어나게 만들었죠. 이 방법이 잘 먹혀서 넷플릭스는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을 지금까지 쓰고 있었다면, 우리가 아는 넷플릭스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개인별로 족집게처럼 찾아주게 되었고(초개인화 기술), 인터넷과 스트리밍 기술을 적극 활용해서 내가 가장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내 집 거실에서 실시간으로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가입자 증가가 정체되기 시작한 거죠. 사실 지금의 정체 원인도 고객이 원하는 영화를 잘 공급해 주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디즈니가 픽사, 마블, 루카스 필름 등을 합병하고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제공하지 못하게 하면서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죠. 지금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초개인화된 넷플릭스 초기화면

다 읽고 보니 황당하다고요? 어쩌라는 건지 모르시겠다고요? 맞습니다. 거의 곡예에 가까운 수준이죠. 이렇게 큰 변혁의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성공하는 기업과 몰락하는 기업의 운명이 엇갈리겠죠. 공식처럼 답이 정해져 있다면 다 성공하겠죠. 그리고 기업 규모가 크면 클수록 유리해지겠죠.

우리는 지금 지옥으로 떨어지는 문과 천당으로 오르는 문 사이에 서 있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는지에 따라 번영과 파멸이 갈릴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문 앞에는 두 명의 문지기가 각각 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 문이 천국으로 통하는지는 두 문지기만 알고 있죠.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 문지기는 사실만 말하고, 또 다른 문지기는 사실과 정반대로만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사실을 말하는 문지기인지를 모른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 상황과 비슷하죠?

자! 질문은 한 번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천국으로 가는 문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어떤 문지기에게라도 이렇게 물어보면 됩니다.

“저 문지기는 어떤 문을 지옥문이라 할까요?”

잘 이해가 안 가신다고요? 조용한 곳에 가셔서 백지 한 장을 펴고 케이스 별로 한 번 적어보세요. 진실을 말하는 문지기에게 저 질문을 던졌다면, 다른 문지기가 답과 반대로 대답하니 천국 문을 가리킬 겁니다. 거짓말하는 문지기는 저 질문을 받으면 지옥문 반대인 천국 문을 답할 테니까요. 반대로 여러분이 반대로 답하는 문지기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진실을 답하는 문지기는 지옥문을 그래도 알려줄 테니 거짓말하는 문지기는 반대로 천국 문을 가리키겠죠.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첫째,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천국의 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
둘째,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적절하고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


기업의 DT를 이야기하며 말씀드렸던 내용과 동일하죠.

최근 ‘현장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쓰면서 책상 앞에 적어두고 매일 보던 구절이 있습니다.

“과거가 미래에 빛을 비추지 않는 시기가 있다”

지금과 같은 대전환기나 위기 상황에는 과거가 미래에 어떤 가이드라인도 되지 못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사람들, 한몫 잡겠다는 장사꾼들이 난무합니다. 그 혼돈 속에서 천국으로 가는 문을 찾아야 하는 일이 여러분이 가진 운명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옥석을 가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지셔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6편부터 세 편에 걸쳐 기업이 DT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들려 드렸습니다. 제 생각이 꼭 맞지도 않고 세상 어디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핵심 기술 세 가지 기술인 인공지능(A), 빅데이터(B), 클라우드(C)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1편 : 애인의 유산과 매트릭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2편 : 사이퍼의 스테이크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3편 : DT 사이클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4편 :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5편 : 요약은 컨설턴트의 숙명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6편 : 멋쟁이는 옷을 제때 갈아입는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7편 : 장인의 연장


삼성SDS 소셜크리에이터 주호재(Principal Consul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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