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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과 마음이 기억하는 몸짓!


※ 이 콘텐츠는 삼성SDS 임직원을 위한 사내 소통 채널 <CommOn SDS>에 게시된 글입니다.
삼성SDS 임직원을 위해 기고해주신 현대무용가 최수진씨의 글을 여러분들과 나눕니다.


 

“아! 눈 가리고 춤추셨던 분!” 방송에 출연한 지 3년이 지났다. 두 눈을 붕대로 가리고 강하게 저항하는 듯한 몸짓이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일까. 여전히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를 ‘댄싱 9 최수진’으로 기억한다. 종종 현대무용에 대한 질문도 이어진다. 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이라는 새로운 도전 , 나의 결정은 옳았다.

최수진

#왜 댄싱9 출연을 결심했는가?

5년간의 뉴욕 시더레이크 발레단 활동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무렵 나는 무척 힘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연을 준비해도 관객은 언제나 동료들과 제자, 그리고 선생님 등 대다수가 지인들이었다. 숱한 연습 끝에 오른 무대에서 마주한 관객의 범위는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이렇게 멋진 공연을 준비했는데, 왜 더 많은 관객이 찾아오지 않을까. ‘현대무용’은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나는 이런저런 고민을 끝도 없이 늘어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에 ‘댄싱 9’을 만났다.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좋은 기회임이 분명해 보였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방송 댄스 외의 춤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춤이라는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특정 장르 외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춤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끌어당길 자신이 있었다.

주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프로의 위치에서 활동하는 무용수가 굳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야겠냐며 적극적으로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무대에서 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무용수이기 때문에 혹 방송에서 그 외의 원하지 않는 모습이 내비춰 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날마다 반복됐다. 하지만 대중에게 ‘현대무용’을 알리고 ‘무용수 최수진’의 춤을 보여 주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가 나의 불안한 마음을 밀어냈다. 나는 나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화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생전 처음 해보는 생소한 미션, 다른 장르의 댄서들과 만들어내는 조합. 단 몇 시간 만에 안무를 창작해 무대 위에 선보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부족한 잠과 싸우는 것도 또 하나의 극복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무대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무용수 ‘최수진’으로서 최선을 다해 집중했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몸의 언어로 말하고자 노력했다.

그때 흘린 땀은 단 한 방울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늘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좋은 무대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방송 이후, 많은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궁금해하기 시작하고 무용수 최수진을 기억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댄싱 9’을 통해 실현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목표를 모두 이룬 셈이었다. 나를 믿고 나아간 긍정의 마음이 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마치 마법을 부리듯이.

최수진1

#우연한 시작, 발레, 그리고 현대무용!

최초의 마법은 열 살 때쯤 시작된 것 같다. 당시 나는 6년 가까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길 원했던 어머니의 바람 때문이었는데, 나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 계신 고모님 댁을 방문했다가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이 나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순백의 발레튜튜와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린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고모의 얼굴이 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이다. 움직임이 없는 사진이었는데도 아름다운 몸의 역동성이 느껴졌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해 버렸다. 지금의 나는 그때부터 벌써 무용수가 된 것이다. 그때까지 한 번도 춤을 춰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내가 당연히 무용수가 될 거라고 믿었다. 긍정의 마음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시작은 발레였다. 연습이 늘 즐거울 수는 없기 때문에 힘들 때도 잦았다. 그래도 좋았다. 좋아하는 춤을 추며 땀에 흠뻑 젖었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정확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한 순간의 무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춤을 추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강한 열정을 안고 수년의 시간을 발레와 함께 살았다.

지칠 줄 모르는 나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모든 일에 무기력했다. 발레 동작도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몸은 축축 처졌다. 한없이 땅속으로 꺼질 것만 같던 그때, 나에게 어떤 ‘몸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언젠가 현대무용 작품으로 딱 한 번 무대에 섰던 그 날의 모든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발레슈즈를 벗고 정해진 동작에서 탈피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표현하던 나의 모습이 불쑥 내 심장을 두드린 것이다.

나는 고3이 되자마자 발레에서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꿨다. 여태껏 해왔던 발레를 뒤로 한 채 뒤늦게 다른 장르에 도전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현대무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현대무용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돼 있었다. 결정을 위해 필요한 질문은 딱 하나뿐이었다. 어떤 춤으로 무대에 섰을 때 내가 더 행복할 것인가.

사라진 줄만 알았던 긍정의 마법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갑작스럽게 전공을 바꿨기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그 동안 쌓아온 발레 경력이 분명 다른 춤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 나를 이끌어주었다. 물론 그런 마음만으로 쉽게 현대무용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변화에 따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더 혹독하게 연습에 매달렸다. 단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인 시간이었다. 나는 전공을 바꾼 지 4개월 만에 동아무용콩쿠르 학생부에서 금상을 받아 입상했다. 무용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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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 현대 무용수 최수진!

오늘의 나, ‘현대무용수’ 최수진은 매일 아침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로 향한다. 7월 말에 올릴 공연 <제전악-장미의 잔상> 준비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낸 현재의 내 모습, 날마다 현대무용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신기하고 고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믿고 열심히 미래를 창작하는 중이다.

세상에 마법이 정말 존재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있다. 불쑥 찾아오는 변화, 또는 어떤 기회.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긍정의 마음을 앞세워 선뜻 한 걸음 내디딘다. 사실 이 마법은 자신을 신뢰하는 누구나 부릴 수 있는, 별다른 비법이 없는 공공의 마법이기도 하다. 망설이지 말고 시도해 보라고 모두에게 슬며시 권해보고 싶다.

최수진, 현대무용가,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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