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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시스템의 본질 - 통제와 유도 (2)

“나무는 잘 옮기고 오셨나요?”

지난 글에서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를 들려드렸죠. 이번 글에서는 통제와 유도가 회사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현장에서 컨설팅을 하며 실제로 사용했던 통제와 유도책은 크게 4가지입니다.

통제 - 강제 규칙(Rule-set) 유도 - 핵심지표 (KPI) 할일 목록(To-do list) 사전 경고(Early warning)

먼저 통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통제는 설계하는 사람이 강제로, 원하지 않는 행위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프로세스를 정의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통제입니다. 프로세스와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표준화’입니다. 프로세스는 먼저 표준화되어야 합니다. ‘마눌님 명품 백 구매 프로세스’로 돌아가 보죠. 명품 백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백화점 같은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해서 사도 되고, 쿠팡, 옥션 등을 통해 온라인 구매를 해도 됩니다. 새것만 살 수 있는 게 아니죠. 중고로도 구매가 가능합니다. 그것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가능하죠. 그중에서도 과거에 제가 가장 선호했던 방법은 중국 출장을 가면 항상 방문했던 짝퉁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이었죠. 개인이야 가격과 품질만 보장된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구매를 하게 되면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표준으로 정합니다. 상황에 따라 표준이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지만, 최대한 표준은 적게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마눌님의 승인을 받아 백화점과 쿠팡에서 구매하는 것을 표준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짝퉁 시장을 향하는 제 발걸음을 막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때 필요한 것이 ‘강제 규칙(룰 셋, Rule-set)’입니다. 마눌님은 아마도 이런 강제 규칙을 만들 겁니다.

“정품 인증서 없는 인수는 없다”

통제책은 정해진 대로 프로세스를 준수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허용된 것 외는 못하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반면 유도는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강화하게 만듭니다. 대표적인 것이 ‘핵심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로 해석되는 ‘KPI’입니다. KPI는 어떤 프로세스를 운영할 때 지향하는 목표 수준을 정하고, 실적을 측정하여 목표와 비교해 운영 현황 및 진척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을 말합니다. KPI를 달성하면 인센티브가 주어지고, 달성하지 못하면 질책을 받게 됩니다. ‘할 일 목록(To-do list)’은 프로세스와 담당자를 연계해 특정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정이 더해지면 오늘을 기준으로 1주일 이내에 해야 할 일을 ‘To-do’로 보여줄 수 있겠지요. 날짜만 조정하면 지연 리스트도 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보여줘서 미리 일을 계획하고 일정을 조정하도록 유도합니다.

‘사전 경고(Early warning)’는 종종 ‘할 일 목록(To-do list)’과 유사하게 사용됩니다. ‘할 일 목록(To-do list)’에서 기간을 좀 세분화하고 리스트 앞에 신호등 모양의 아이콘을 더하면 ‘사전 경고(Early warning)’가 되기 때문이죠. 명품 백을 구매하는 것을 예로 들면, 최소 언제까지 마눌님 손에 백이 들려야 화를 내지 않는다는 암묵적 기간이 있을 겁니다.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최소한 언제까지 발주를 내야 하는지가 나오겠죠. 예를 들어 요청을 하고 5일 이내면 기분이 좋고, 10일 이내이면 약간 짜증을 내고, 11일이 지나면 폭발한다면 ‘사전 경고(Early warning)’는 6일과 10일 사이에 ‘경고(황색)’를 보여줄 것이고, 10일이 지난 시점부터는 ‘큰일 났음(적색)’을 띄울 것입니다. 신호등에서 노란색을 보면 빨리 구매하려는 동기 부여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유도책은 잘 만들면 선순환을 만들지만, 자칫 잘못하면 의도치 않은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유도책인 KPI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것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뉴스에서 국내 최대 기업이 효행상을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최고의 효자, 효녀 몇 분이 상을 받으셨더군요. 그때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얼마나 효도를 하는지 어떻게 측정을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효행을 실천할까?
아침에 일어났더니 유교를 숭배하는 나라의 왕이 되어 있습니다. 유교의 이념을 국가 차원에서 실천하기 위해 효도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기로 했습니다. 1년마다 객관적으로 수치를 뽑아서 순위를 매기고 순위에 따라 포상과 세금 감면 등의 파격적인 혜택을 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KPI를 만들겠습니까? 평소에 제가 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몇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
- 함께 본 영화 숫자
- 목욕시켜드린 횟수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방을 붙였습니다. 앞으로 효도는 세 가지 KPI로 측정하고 이를 고을 별로 집계하고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이 나라는 동방 예의지국이 되었을까요? 효도가 아닌 학대로 이어진 사례가 많이 발생했을 겁니다.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니 어떤 노인은 원래 몇 시간이던 학대를 하루 종일 받아야 했을 겁니다. 거동이 어려워 집 안에서 움직이기도 힘든데, 억지로 영화관에 끌려가셨을 수도 있겠죠. 설마? 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일이 회사에서는 수시로 벌어집니다.

유도책을 잘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계된 유도책을 어떤 순서로 시행하는지도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잊지 못하는 감동적인 축구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히딩크 감독 이전의 한국 축구는 골을 넣기 위한 훈련이 주를 이루는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한 훈련에만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히딩크가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선수들이 지옥훈련이라고 부를 만큼 혹독한 체력 강화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했습니다.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체력 훈련이냐는 비난과 전술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대표팀은 평가전에서 5:0으로 참패를 당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한국 대표팀은 변하기 시작했고, 결국 월드컵에서 유례없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골을 넣을 수 없습니다.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골을 넣겠어요.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우리나라 축구계는 그전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런 일은 축구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경영 성과에 기여한 정도를 보고하라고 한다면, 이는 드리블도 못하는 어린 선수에게 발리슛을 연습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글로벌 기업에서 SCM을 총괄하던 한 임원의 말이 기업 납니다. 벤치마킹에서 어떤 KPI를 관리하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SCM 구축 후에 성과 지표(KPI)는 시기에 맞게 룰 준수, 실행력, 성과의 순으로 순차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KPI를 만들고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눈 후에 반드시 순서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KPI는 쉽고 분명한 것부터 챙기기 시작해야 합니다. 체계를 구축한 초기에는 룰을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를 평가해야 하죠. 룰 준수와 관련된 KPI는 판매 예측치를 얼마나 성실히 입력하고 있는가? 영업-생산 간 합의된 계획 기준으로 실제 생산 계획을 수립했는가? 그리고 정해진 순서대로 생산을 했는가? 등 각 부문별로 운영 원칙으로 정해진 사항을 실제 프로세스 운영 시에 지키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지표입니다.

룰 준수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나면 그다음은 현재 프로세스에 대한 실행력 평가가 이뤄져야 합니다. 판매 예측 수량 입력 여부를 넘어 예측 치가 실제 수요와 비교하여 정확한지, 확정된 계획을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등을 평가합니다. 그 이후에 재고 일수, 매출 증가율 등의 성과 지표를 평가해야 합니다. 이 말은 SCM 체제가 이제 겨우 구축되었는데 재고 감축, 리드 타임 감축 등을 성과 지표로 측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의 안정화를 더디게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계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경영진이 미래 지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체계를 잘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상사가 성과를 내라는 압력을 넣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의 CEO들이 성과에만 집착합니다. 체력이 튼튼해지고 나서 골을 기대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몇 골을 넣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면 성과 지표는 당연히 가시적인 것에만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과 지표를 좋아 보이게 만들기 위한 비밀스러운 작업이 시작되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데이터 오류가 발생하며, 머지않아 시스템 활용도는 떨어지게 됩니다.

두 번에 걸쳐 통제와 유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만큼 프로세스를 잘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프로세스를 완성하기 위한 통제와 유도책도 중요합니다.

출처 : 현장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공급망 관리(SCM) 성공 전략 (주호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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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 소셜크리에이터 주호재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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