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SaaS 매출은 ‘유료 구독 사용자 수’의 성장과 그 사용자의 업그레이드나 추가 구매에 따른 ‘사용자당 평균 매출 (ARPU: Average Revenue Per User)에 증가에 의존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M365의 경우 ‘유료 구독 사용자 수’가 정체를 이른 상태에서, 코파일럿 라이선스 판매로 분기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발표를 했다. AI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제시하는 비전과 이런 발표의 핵심에는 화이트칼라 업무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하여 기업의 인건비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향상한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따라가면 치명적인 역설에 부딪히게 된다. 만약 AI가 정말로 인력을 대체하여 일자리를 줄인다면, 기존의 사용자당 구독 요금(per-user, per-seat subscription)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SaaS 제공자는 매출 감소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경험 및 디바이스 부문을 담당하는 라제시 자(Rajesh Jha)는 최근 컨퍼런스에서 AI가 Microsoft 365 제품군에서 사용자 수를 줄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하며, 오히려 AI가 사용자 수 성장을 이끌 것이라 주장하였다.[1] 그는 "미래의 조직은 사람보다 AI 에이전트의 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이 AI 에이전트들이 소프트웨어 구독의 새로운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한다. 이 전망은 AI 에이전트가 단순한 API 코드가 아니라, 마치 인간 직원처럼 작동하는 구체적인 형태(embodied)를 가진 디지털 직원이 될 것임을 전제로 한다. 이 에이전트들은 자신만의 ID를 가지고, 주소록에 등록되며, 메일박스를 보유하고, 안전한 작업 수행을 위한 컴퓨터 실행 공간과 권한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곧 SaaS 기업에 '새로운 사용자 좌석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득력을 준다.
이는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에이전트를 도입하려는 기존의 직관적인 기대와는 상충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에이전트가 실제로 그 해당 역할 직원 연봉 5천만을 절감할 수 있다면, 에이전트 구독료(예: 100-200만 원)를 지불하는 것은 ROI 관점에서 여전히 기업에 이득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말은 AI 비즈니스의 핵심 질문을 던진다: 에이전트는 기존 SaaS 모델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장하며 나아가 비즈니스 생태계의 핵심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을 수 있는가?
AI 에이전트가 새로운 라이선스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기능과 역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독립적인 ‘행위 주체’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는 LLM 기술의 진화 단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1단계: 질문-답변형 챗봇의 한계
초기 LLM 기반 도구들은 주로 정보 합성, 콘텐츠 생성, 자연어 소통에 중점을 둔 지식 기반 시스템이었다. 사용자에게는 채팅 인터페이스 형태로 나타났으며, 때로는 지식 기반 위에 영리한 프롬프트가 추가되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챗봇들은 주로 개별적인 질문에 답변하는 데 유용하였으나, 기업 시스템과 분리되어 있었고, 과거 상호작용의 메모리를 유지하거나 복잡한 워크플로우를 처리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2단계: 코파일럿 – 도와주는 도구, 수동적 어시스턴트
디지털 어시스턴트는 LLM을 활용하여 기존 워크플로우 옆에 앉아 개인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M 365 코파일럿이 대표적인 예로, 이메일 작성, 문서 요약, 슬라이드 초안 생성 등의 개별 작업을 지원한다. 그러나 코파일럿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며, 인간의 명시적인 요청인 ‘프롬프트’가 있을 때만 작동하는 보조 도구의 역할에 머문다. 이는 AI가 기존 워크플로우에 덧붙여진 형태로, 맥킨지가 이야기하는 광범위하게 배포되더라도 그 경제적 효과가 측정하기 어렵고 분산되는 ‘AI 역설[2]’의 주요 원인이 된다.
3단계: 에이전트 –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
AI 에이전트는 생성형 AI의 다음 단계로, 자율성(autonomy), 계획(planning), 기억(memory), 통합(integration) 기능을 결합하여, 자율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실행을 가능하게 한다.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목표를 주면, 그 목표를 하위 작업으로 분해하고, 실행 계획을 세우며, 외부 도구 및 시스템과 상호작용하여 행동을 수행하고, 심지어 실시간으로 수정하고, 적응할 수 있다. 아마존 CEO가 AWS re:Invent 2025 키노트에서 에이전트가 기업이 AI로부터 가치를 얻는 ‘주된 방식’이 될 것[3]이라고 언급했듯, 에이전트는 AI를 반응적인 도구에서 능동적인 협업자로 전환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에이전트가 궁극적으로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된다는 것은, 사용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과 플랫폼과의 상호작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본 변화: 자연어 중심의 지휘 체계
과거에는 복잡한 작업을 자동화하려면 코딩이나 규칙 기반 프로그래밍이 필요했지만, 에이전트는 자연어를 명령어 형태로 사용하여 복잡한 워크플로우를 빠르고 쉽게 부호화할 수 있다. 사용자는 더 이상 특정 앱이나 기능의 UI/UX에 갇히지 않고, 마치 유능한 동료에게 업무를 지시하듯이 에이전트에게 ‘의도(intent)’를 표현하게 된다. 에이전트는 이 의도를 바탕으로 여러 앱과 시스템을 가로지르며 작업을 조정하고 실행하는 ‘지휘자’ 역할을 수행한다.
시스템/플랫폼 입장에서 본 변화: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
에이전트는 복잡한 비즈니스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하는 핵심 주체가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이 에이전트들을 조정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엔진'이자 검색 엔진이 될 것이라고 본다. 세일즈포스 역시 에이전트포스를 멀티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로 확장하고 있으며, 서비스나우는 다양한 기술 기업이 판매하는 에이전트들을 조율하는 플랫폼으로 자사 소프트웨어를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는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자체가 인간 상호작용보다는 기계 상호작용에 맞게 재편되어, 에이전트-네이티브 환경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조직의 관점: ‘직원 + 에이전트’ 하이브리드 팀
에이전트의 등장은 단순한 도구 도입을 넘어, 인간과 에이전트의 역할 재정의를 요구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에이전트는 인간 직원의 역할을 수동적인 실행자에서 전략적 감독자, 예외 처리자, 서비스 품질 관리자로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은행의 대출 심사 과정에서 관계 관리자는 서류 작업 대신 에이전트가 추출한 데이터를 검토하고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인간 + 에이전트’ 하이브리드 팀 구성은 조직 전체의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위한 핵심 동력이 된다.
[그림 1] 신용 리스크 프로세스 전환 (출처: McKinsey)
관계 담당 매니저(RM)가 각 업무 단계를 수작업으로 수행하며, 신용 리스크 메모 1건당 평균 2~4일이 소요됨.
RM이 모든 업무를 수동으로 처리 → 데이터 추출 → 누락 데이터 요청 → 데이터 분석 → 최종 신용 등급 산정
AI 에이전트가 전 단계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고, 인간 담당자는 결과를 검토 및 승인함.
성과: 20~60% 생산성 향상 / 30% 의사결정 속도 개선
AI 에이전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은 기존의 소프트웨어 판매 방식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방식을 넘어, 에이전트 인프라와 라이선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쟁 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가장 선도적으로 에이전트 관점의 가격 정책을 내놓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기존의 강력한 M365 생태계와 클라우드 기반의 아이덴티티 관리 시스템을 활용하여 AI 에이전트를 자사의 라이선스 모델 안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에이전트 사용자/좌석 모델: AI 에이전트를 주소록에 있는 ID와 메일박스를 가진 구체적인 엔티티로 정의하며, 이들이 M365 라이선스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용자/좌석’이 될 것으로 본다. 이는 인간 직원의 수가 줄더라도, 그 자리를 채우는 디지털 에이전트 수의 증가로 매출을 유지하거나 성장시키려는 전략적 발상이다.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 Agent 365를 통해 고객들이 에이전트를 민주적으로 생성하되, 그 확산과 관리 이슈를 방지하도록 돕는 거버넌스 및 컴플라이언스를 제공한다. 이는 코파일럿을 넘어, 모든 에이전트 활동을 조정하고 감독하는 최상위 플랫폼이 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AWS는 자체 LLM(Omni)이나 AI 칩(Trainium3)이 경쟁에서 구글이나 OpenAI에 비해 다소 고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대신 클라우드 인프라 1위라는 핵심 강점을 활용하여, 모든 에이전트가 구동되는 기본 실행 환경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프라 기반 전략: AWS의 전략은 ‘모델이 내 것이냐 남의 것이냐’보다 ‘어디 위에서 돌리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면, 이 에이전트들은 결국 AWS의 클라우드 서버, 스토리지, 데이터베이스 같은 기본 인프라를 소비하게 될 것이며, AWS는 이미 수많은 대기업과 구축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지위를 이어갈 것이라 기대한다.
베드락 AgentCore와 신뢰/보안 포지셔닝: 에이전트 개발 서비스인 Bedrock AgentCore를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안전 및 보안 제어 기능을 출시하여 기업들이 ‘통제 불가능한 AI’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AWS가 엔터프라이즈급 보안 및 컴플라이언스를 갖춘 에이전트 플랫폼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시장의 Big 3 역시 에이전트 시대를 맞아 기존의 ‘Seat’ 모델로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일즈포스 (하이브리드 Seat + Consumption): 기존의 사용자 기반 라이선스($/user/month) 모델 위에, 에이전트 활동에 따라 과금하는 Flex Credits라는 사용량 기반(pay-per-action) 모델을 도입했다.[4] 특히 새로운 Flex Agreement를 통해 고객은 인간 사용자 라이선스를 Flex Credits으로 상호 전환할 수 있게 되어, 인건비 절감 예산을 AI 에이전트 예산으로 유연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SAP (User + AI Unit + 프로세스 번들): SAP는 전통적인 Named User 라이선스와 함께, AI 서비스 사용량을 측정하는 AI Unit이라는 소비량 기반 과금 방식을 사용한다.[5] SAP의 협업형 AI 에이전트인 Joule은 재무, HR, 공급망 등 SAP 내의 핵심 프로세스를 가로지르는 자동화를 목표로 하며, 장기적으로는 프로세스 단위 과금(예: 주문당, 인보이스당)과 결합하여 에이전트를 ‘프로세스 자동화 엔진’으로 번들할 가능성이 크다.
[그림 2] 사용량 기준으로 비용을 예상해 볼 수 있는 SAP AI Estimator (출처: SAP)
오라클 (컨섬션 중심): Fusion Cloud 애플리케이션 사용자에게는 AI 에이전트 스튜디오를 추가 라이선스 없이 제공하는 고객 유지 전략을 취하여 경쟁사로의 이탈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실제 OCI AI 에이전트는 트랜잭션(문자 수) 및 스토리지 기반의 순수한 컨섬션 모델로 과금된다. 즉, 오라클은 에이전트가 소비하는 클라우드 인프라를 팔아 매출을 증대하려는 전략이다.
위에서 소개한 빅테크 기업의 전략적 공통점은 더 이상 단순히 “앱을 더 많이 팔겠다”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사용하는 인프라 용량과 통행료를 팔겠다”는 것이다. 즉 라이선스의 초점을 ‘좌석 = 사람’이라는 전제를 버리고, 좌석을 ‘작업 주체(사람 + 에이전트)’ 기준으로 재정의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에이전트에게 M365 사용자/좌석이라는 인프라 접근 권한을 라이선스하고, AWS가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Salesforce가 Flex Credits이라는 사용량 기반 통화를 판매하며, SAP가 AI Unit을 사용하는 것은, 사용자에서 에이전트가 수행하는 워크로드의 소비량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통적인 SaaS는 사용자 수에 비례하여 수익이 발생하는 좌석 기반 모델이었지만, AI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라이선스 모델은 ‘행위 주체’와 ‘수행하는 작업(Action/Outcome)’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콤의 Fin AI 에이전트는 에이전트당 월 $29의 고정 요금으로 책정되어, 에이전트를 인간과 동일한 ‘사용자’로 간주한다.
주요 SaaS 벤더들은 라이선스 수익의 예측 가능성(Seat-based)과 AI의 실제 가치 반영(Usage/Outcome)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복합적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고 있다.
(1) 사용량 기반(Usage-based) 모델:
(2) 성과 기반(Outcome-based) 모델:
<표 1> AI 에이전트 가격 모델 예시
| AI 에이전트 | 가격 예시 | 가격 모델 | 과금 단위 |
|---|---|---|---|
| 세일즈포스 Agentforce | 대화 1회당 $2 | 사용량 기반 | 워크플로우 단위 |
| 마이크로소프트 Copilot | 시간당 $4 | 사용량 기반 | 액션 단위 |
| GPT Researcher | 리서치 1건당 약 $0.4 | 사용량 기반 | 액션 단위 |
| OpenAI Operator | 입력: 100만 토큰당 $15 출력: 100만 토큰당 $60 |
사용량 기반 | 액션 단위 |
| Intercom – Fin AI Agent | 성공적 해결 1건당 $0.99 | 성과 기반 | 작업 완료 |
| Zendesk AI | 성공적 해결 1건당 과금 | 성과 기반 | 작업 완료 |
장기적으로는 AI 에이전트가 인간보다 더 많은 양의 복잡한 일을 수행하게 될수록, 라이선스 모델은 워크로드, 워크플로우 또는 성과 단위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사용자/좌석 기반 라이선스는 에이전트의 ‘무제한 호출’을 보장하는 경계치로만 남고, 실제 수익성은 에이전트가 처리한 ‘티켓 수, 인보이스 수, 주문 수’ 등의 비즈니스 성과 지표에서 나올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 AWS를 비롯한 주요 테크 기업들은 ‘사람’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새로운 고객으로 정의하며 라이선스 모델을 재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에이전트에게 소프트웨어를 판다는 것은, 단지 과금의 단위를 바꾸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곧, 기업이 어떤 주체에게 시스템 접근 권한을 부여하고, 어느 수준까지 자율적 행동을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과 통제권을 함께 이전하는 결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에이전트 라이선스는 단순한 요금제가 아니라, 하나의 ‘신원(Identity)’과 ‘권한(Role)’, 그리고 ‘책임(Accountability)’을 부여하는 계약 단위에 가깝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논의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얼마에 팔 것인가”에서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로 이동하게 된다.
이제 에이전트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더 이상 “에이전트를 몇 개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에이전트를 우리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가 된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에이전트는 이제 단순한 기능 모듈이 아니라, 라이선스의 단위이자 새로운 ‘작업 주체’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조직 내에서 강력한 ‘최상위 인터페이스’로 기능하며 점점 더 많은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새로운 종류의 리스크 역시 급속히 확대된다. 즉, 에이전트는 조직에 막대한 가치를 제공할 잠재적 주체임과 동시에, 잘못 설계될 경우 슈퍼 리스크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존재다.
현재의 AI 에이전트 기술은 여전히 ‘미성숙’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부분의 에이전트는 아직 특정 애플리케이션 내부에 제한된 형태로 구현되어 있으며, 사람처럼 여러 시스템을 넘나들며 복합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이전트를 실제 프로덕션 환경에 투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성능이나 비용이 아니라, 단연 ‘신뢰(trust)’다.
가트너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명확하지 않은 비즈니스 가치, 미비한 거버넌스 구조, 그리고 위험 통제 체계의 부재로 인해, 2027년 말까지 전체 에이전트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취소될 것으로 전망한다.[6] 중요한 점은, 이 실패의 주된 원인이 AI의 ‘환각’과 같은 인식 오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조직에 더 실질적인 위협은, 에이전트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민감한 데이터에 접근하거나 잘못된 시스템 조작을 수행함으로써 발생하는 운영 리스크와 보안 리스크에 있다. 에이전트가 실질적인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려면, 조직은 AI 시스템에 일정 수준의 자율적 행동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행동이 언제, 어떤 이유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통제하고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에이전트는 더 이상 단일 기술 요소가 아니라, 기업의 IT 거버넌스 체계 전체를 재설계하도록 요구하는 존재가 된다.
문제는 기술의 민주화가 오히려 새로운 복잡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로우코드 플랫폼의 확산으로 누구나 손쉽게 에이전트를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중복되고 파편화되며 통제되지 않는 에이전트들이 조직 내에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이른바 ‘에이전트 스프롤(Agent Sprawl)’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데이터 사일로와 유사하지만, 훨씬 더 위험한 형태의 새로운 그림자 IT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에이전트 AI 메시’다. 이는 단일 에이전트를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 내 모든 에이전트의 활동을 통합적으로 관측·통제·감사할 수 있는 거버넌스 아키텍처를 의미한다. 이 메시 구조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핵심 기능을 포함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기능들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에이전트 기반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에이전트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소프트웨어 접근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데이터와 시스템에 대한 일정 수준의 통제권을 함께 위임한다는 의미이며, 이 위임이 가능해지는 순간은 오직 신뢰가 구조적으로 설계되었을 때뿐이다.
결국, 에이전트 중심의 라이선스 모델은 가격 전략이 아니라 신뢰 전략이며, IT 아키텍처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 아키텍처의 문제다. 에이전트를 도입한다는 것은 자동화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누가 어떤 에이전트에게 무엇을 맡길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정의 없이, 에이전트 기반 비즈니스 모델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AI 에이전트는 더 이상 기술팀의 실험 프로젝트가 아니라, 최고경영진이 직접 설계해야 할 기업 운영 모델 전환의 핵심 요소가 된다. 에이전트 전략은 곧 인사 전략이며, 보안 전략이고, 동시에 수익 모델 전략이다. 다시 말해, 에이전트에 대한 결정은 기술 선택이 아니라, 경영 판단이다.
“AI가 사용자 수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릴 것이다”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발언은, 단순한 마케팅 수사가 아니다. 이는 AI 에이전트가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계산 단위이자,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의 새로운 주체가 될 것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의 선언에 가깝다. 기존의 사람 중심 좌석 모델은, 이제 에이전트라는 ‘행위 주체’를 포함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좌석 + 사용량 + 성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영역 역시 명확하다. 더 많은 AI 기능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작동하는 인프라와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다. 누가 에이전트의 신원을 관리하고, 누가 에이전트에게 일을 시키고, 누가 그 결과를 보증하느냐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승자는 단순히 더 좋은 모델을 만든 기업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신뢰받을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설계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점은, 에이전트가 기업 가치를 창출하는 주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업계 전반에 이미 폭넓은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올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먼저 구조화하느냐’에 있다. 그리고 이 구조화의 핵심이 바로 신뢰와 거버넌스다.
이제 기업은 더 이상 AI를 개별 프로젝트나 PoC 수준에서 다룰 여유가 없다. 탐색의 단계는 이미 끝났다. 지금 기업이 서 있는 지점은, 에이전트를 실험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사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이 전환은 특정 부서에 위임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AI 에이전트 전략은 더 이상 CIO나 IT 조직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는 수익 구조, 인력 구조, 리스크 관리, 고객 경험을 동시에 재설계하는 일이며, 따라서 CEO를 포함한 경영진이 직접 설계하고 주도해야 할 경영 어젠다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전환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맥킨지가 제시한 세 가지 리더십 행동 원칙을 정리하며 글을 마친다.
첫째, AI 실험 단계를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우선순위를 재정렬하라.
그동안의 PoC와 파일럿 프로젝트를 구조적으로 리뷰하고, 확장 가능성이 없는 실험은 과감히 종료해야 한다. 학습 결과는 조직의 자산으로 축적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역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둘째, AI 거버넌스와 운영 모델을 재설계하라.
비즈니스 리더, CHRO, CDO, CIO가 참여하는 전사 차원의 AI 전략 위원회를 구성하고, AI·IT·데이터 투자를 통합 관리해야 한다. AI 투자는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경영 투자 포트폴리오로 관리돼야 한다.
셋째, 첫 번째 상징적 전환 프로젝트를 실행함과 동시에 기술 기반을 구축하라.
핵심 업무 영역에서 AI 에이전트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즉시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기술 인프라, 데이터 품질, 거버넌스 체계, 인재 역량까지 포함한 Agent-ready 조직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또 하나의 IT 도입 항목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전환의 출발점이다.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은 도구를 쓰는 사용자로 남을 수도 있고, 에이전트를 설계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선택이, 앞으로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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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 France의 Senior Program Manager
한국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 후, 7년간 한국후지쯔에서 개발자로 근무하고, 1998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Business Objects에서 개발 매니저와 프로그램 매니저를 거쳐, 현재 SAP의 클라우드 ERP 엔지니어링 그룹의 시니어 프로덕트/프로그램 매니저로 근무 중입니다. 책 <프로덕트 매니지먼트>의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