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SCM이 필요 없다.

지난 글에서 리처드 왕의 십자군(십자가와 공급망 관리)을 만나봤습니다. 전쟁은 국가 존망이 걸려있고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였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 균형은 맞아야 하겠지만, 수요를 맞추는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지면 이웃나라 경제가 좋아지기도 하죠. 그런데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 공급망 관리(SCM)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생명입니다.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만큼 맞추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때때로 마법사가 해결해 주기를 바랄 만큼이요.

마법사만 가능한 일

공급망 관리 마법사가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수요를 받는 즉시 공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죠. 마법사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마술사가 있습니다. 어릴 때는 둘이 같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군요. 이 둘의 차이점을 뭘까요? 결과를 내는데 얼마나 시간을 쓰느냐입니다.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마법사는 요청을 받으면 바로 지팡이를 휘두르고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법을 쓰는 순간이 항상 절체절명의 위험한 순간이죠. 시간을 끌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선 현실의 마법사는 어떻게 하든 시간을 끕니다. 대신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미녀가 필요하고, 화려한 무대와 음악이 필요합니다. 실력이 있는 마술사일수록 연습을 통해 이 절대적 시간을 줄입니다.

도시락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날의 수요를 계산하는 시점과 모든 고객에게 도시락 배달을 마치는 공급을 완성하는 시점 간의 차이가 짧으면 짧을수록 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을 ‘리드타임(LT, Lead Time)’이라고 합니다. 도시락 가게를 포함한 제조회사에서는 리드타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끝없이 하는데요. 리드타임이 짧으면 실력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1,000개의 도시락을 만드는 리드타임이 1일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도시락은 하루 전에 만들어야 할 겁니다. 날씨가 더운데 하루 동안 만들어서 다음날 배달한다면 식중독 사건이 줄을 이를 겁니다. 날씨가 춥다면 식중독 문제는 없겠지만 고객은 차가운 도시락을 받을 겁니다. 리드타임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6시간이 걸린다면 어떨까요? 도시락을 12시에 모두 배달한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11시부터는 배달을 시작해야 할 겁니다. 포장하고 배달하는 차에 싣는 시간을 30분이라 한다면 새벽 4시 30분에는 조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걸로 끝난다면 그래도 다행이죠. 조리를 위한 식재료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식재료 주문도 미리 해야 하겠죠. 그래서 늦어도 전일 저녁 전에는 주문을 다 받아 확정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맛나 도시락 가게의 고객입니다. 다음날 점심 도시락을 먹으려면 전날 오후에 주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문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맛나에서 계속 도시락을 사 드실까요? 평생에 한 번 사 먹기도 어려운 맛의 도시락이라면 그렇게 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굳이 전날 오후에 주문을 해서 바꾸지도 못하는 도시락을 계속 사 먹지는 않겠죠? 그래서 도시락 가게 입장에서는 최대한 주문을 늦게 받을수록 더 많이 팔 수 있습니다. 고객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문마감 생산완료 배달완료 식자재 준비 및 생산 상차 및 배송

도시락 가게는 세 번의 중요한 시점이 있습니다. 고객 주문을 마감하는 시점, 주문받은 도시락을 모두 완성하는 생산 완료 시점, 그리고 고객 손에 배달을 완료하는 시점이죠. 세 개 시점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마법사뿐이었죠. 우리는 마법사가 아니니 최대한 이들 사이의 간격을 줄여야 최대한 맛있는 도시락을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고객만족으로 연결될 겁니다. 왜 집 밥이 맛있을까요? 솔직히 모든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훌륭할 수는 없잖아요. 그 답이 그래프에 있습니다. 세 시점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죠. 일단 생산 완료와 배달 완료 사이에 시차가 전혀 없죠. 완성되는 순간 식탁에 올라가니까요. 그리고 주문 마감 시점도 없습니다. 요구사항을 그때그때 반영하시죠. 마지막은 보통 라면 수프로 귀결되겠지만요. 비슷한 이유로 뷔페 즉석요리 코너가 가장 인기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원리는 비단 도시락 가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고객이 있는 세상 모든 기업이 가진 공통 문제입니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마법사가 아닌 맛나 도시락 가게 사장은 이 시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먼저 주문 마감부터 생산 완료 사이의 시차를 줄이는 것부터 보죠. 이 사이에 해야 할 일은 식자재 준비 및 도시락 생산입니다. 식자재를 준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모든 필요한 식자재를 미리 사서 쌓아두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엄청 큰 냉장고가 있는 창고가 있어야 할 것이고, 돈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또 너무 오래된 식자재는 썩어서 버려야 하겠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재료 보관 기간을 구분해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수급이 어려운 자재는 미리 발주를 내고 사두는 방법이 있겠죠. 그리고 고기, 생선, 채소와 같은 재료는 가까운 곳에 거래처를 두고 미리 생산계획을 공유하면 될 겁니다. 그래서 공급(생산) 계획이 필요합니다.

생산 완료와 배송 완료 사이 시간은 어떻게 줄일까요? 도시락 생산 라인에서 나와 배송차에 실릴 때까지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겠죠. 그리고 배달하는 루트를 잘 설계해서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을 최소화하면 될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잘해도 거리가 너무 멀면 절대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배송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는 루트에서만 주문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남에서 900개 정도의 도시락을 판매하고 있는데 강북에서 도시락 주문 10개가 들어온다면 무턱대고 주문을 받아서는 안 되겠죠. M사가 샛별 배송(전일 밤에 주문한 물품을 새벽에 문 앞에서 가져다 두는 서비스)을 서울과 경기도에서만 하고 있는 이유라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까지 설명드린 것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주문 마감은 전일에 해야 할 것이고, 생산 완료도 10시에는 마쳐야 강남에서만 배달한다고 해도 12시에 고객이 손에 도시락이 들어갈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전날 오후에 다음날 무조건 도시락 먹겠다고 정하고 그대로 하시나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문은 당일 점심시간에 최대한 가깝게 받고 마감할수록 좋은 거죠. 그런데 일본의 다마고야라는 도시락 회사는 주문을 당일 10시 30분에 마감하고도 12시 이전에 모든 배달을 마친다고 합니다. 개수가 적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요? 하루에 거의 7만 개를 배달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교통지옥인 도쿄에서 말이죠. 어떻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가능할까요?

가장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은 주요 식자재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오늘 메뉴가 돈가스로 정해졌다면 돈가스용 고기 7만 개 분을 확보해야 하겠죠. 상암 월드컵 경기장 최대 수용인원이 6만 명이니 그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돈가스를 제공할 정도의 돼지고기를 확보하고 준비해야 하니 당일 가까운 정육점에서 사 오는 건 불가능하겠죠. 그래서 대량으로 고기를 공급해 줄 공급업체를 다수 확보해야 하고, 미리 주문을 해둬야 할 겁니다. 그래야 공급업체도 고기를 준비할 테니까요. 문제는 주문 마감 시간이 당일 오전 10시 30분이라는 겁니다. 배달까지 1시간 반이 남는데 배송만도 빠듯한 시간이죠. 그래서 메뉴가 정해지면 일정량의 돈가스용 고기를 미리 준비하는 거죠. 문제는 매일 바뀌는 주문을 어떻게 예측해서 필요한 돈가스용 고기 수량을 정하느냐는 겁니다.

다마고야의 도시락 주문량은 요일이나 날짜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월요일은 6만 3천 ~ 6만 8천 개, 화요일은 6만 ~ 6만 4천 개, 수요일과 목요일은 5만 9천 ~ 6만 3천 개, 금요일은 많으면 6만 개, 적으면 5만 7천 개 정도입니다. 월요일과 금요일의 주문량 차이가 클 때는 1만 개입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요? 월요일에는 주말에 외식 등으로 돈을 많이 썼으니 절약한다는 마음으로 도시락 식사를 한다고 하네요. 금요일은 최근 탄력근무제 증가로 오전만 근무하는 인력 많아져 점심을 사무실에서 먹지 않는 경우가 늘어서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월 말 결산일은 바쁘니까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시켜 먹으면서 일하는 경우가 있어 주문량이 늘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워도 주문량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물론 메뉴도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특정한 조건이 합쳐지는 경우, 예를 들어 월요일인데 비가 오고 인기 있는 메뉴가 나오는 날은 주문량이 7만 개를 넘을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주문량
다마고야 도시락 주문량

어떤 경우이든 5만 7천 개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 5만 7천 개의 돈가스용 고기는 미리 준비해도 되는 것이죠. 하지만 아직 최대 치와 최소 준비량 사이에 1만 3천 개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1만 3천 개를 갑자기 준비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죠. 그래서 좀 더 정밀하게 요일별로 접근하고 가능하면 다른 요인까지 감안해서 미리 준비하는 양과 최종 양의 차이를 줄일수록 안정적으로 도시락을 만들 수 있겠지요. 이 정도만 되어도 전일에 대부분의 돈가스 고기를 주문하고 새벽에 배송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입고된 6만 개 정도를 새벽부터 준비할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는 이렇다고 합니다. 전날 사전 작업을 해두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락 공장은 당일 오전 4시부터 가동합니다. 새벽 2시에 직원 10명이 출근해 식자재를 확인하고 품질 검사를 한 후에 도시락 사전 준비에 착수합니다. 새벽 4시가 되면 조리 및 취반 담당 직원 약 50명이 출근해 도시락 생산을 본격 돌입합니다. 이들은 새벽 4시에 출근하지만 아직 그날의 주문 수량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오전 9시가 되어서야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요. 실제 주문량을 모르고 밥과 돈가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겁니다. 기본 수량인 5만 7천 개는 어찌 됐든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9시부터 받은 주문이 10시 30분에 확정이 되면 차이가 나는 수량만큼의 식자재는 공급업체에 나눠서 긴급 주문을 하면 되는 거죠. 공급업체를 공장 주변에서 찾아 두었다면 금방 가지고 올 수 있으니 더 좋을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야기가 도시락 가게에만 국한된 일일까요? 시간과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모든 제조회사가 똑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입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마다 아이폰과 갤럭시가 왜 그렇게 미리 광고에 돈을 쏟아붓고, 사은품을 포함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사전예약을 유도하는데 혈안일까요? 도시락 가게와 똑같은 이유입니다.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고객 주문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최소 예측량과 실제 판매량의 차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100만 대를 만들 수 있도록 공장과 원자재를 준비해 놓았는데 초반 판매가 50만 대 분량 정도라면 50만 대 분량의 자재, 생산설비 및 인력은 놀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적게 준비를 해 두면 출시 후 1달 정도가 지나면서 갑자기 주문량이 늘어나면 감당을 할 수 없겠죠. 그래서 수요와 공급 사이에 공급(생산) 계획이 필요하고 이를 얼마나 잘 수립하느냐에 따라 판매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도시락 가게와 스마트폰 사례를 통해 공급망 관리의 기본 원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출처 : 현장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공급망 관리(SCM) 성공 전략 (주호재 저)

+ 코로나19로 다시 주목받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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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와 공급망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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